1년 전, 필리핀의 따스한 햇살과 친절한 미소 속에서 보낸 여행은 아직도 생생하다. 시니강[sinigang]의 깊은 맛, 해변에서 즐겼던 할로할로[halo-halo]의 달콤함이 서울로 돌아온 후에도 내 기억 속에 강하게 남아 있었다. 그리움이 조금씩 쌓여가던 어느 날, 서울 한복판에서 필리핀의 맛과 향을 다시 느낄 수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바로 혜화동에 있는 필리핀마켓이었다.
돌아온 일요일 다시 필리핀으로 떠나는 마음으로 혜화동을 향했다. 필리핀에서 보냈던 시간이 머릿속을 스치며, 그곳에서 느꼈던 따뜻한 환대와 이국적인 풍경들이 떠올랐다. 서울 한복판에서 만나는 필리핀은 어떤 모습일지 기대와 설렘이 가득했다.
1년 전 필리핀에서 먹었던 맛과 똑같았다. 시니강 한 그릇에 혜화동에서 마닐라 한복판으로 이동한 듯한 느낌을 받았고, 아도보를 먹으며 1년 전 필리핀 재래시장 한가운데에서 아도보를 먹고 있는 내가 눈앞에 있는 듯했다. 너무 맛있어서 비결이 물어보니 '사랑과 정성'이라고 하신다. 어디를 가나 맛있는 음식의 비결은 사랑과 정성인 듯싶다.
국처럼 보이는 것이 1)시니강, 가운데 있는 반찬이 필리핀식 고기 조림인 2)아도보
맛의 비결을 물어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넓은 서울에서 왜 혜화동일까? 주한 필리핀 대사관이 있는 용산도 아니고, 외국인이 많은 이태원도 아닌 혜화동이다. 그래서 왜 혜화동에 오게 되셨는지 여쭤보았다.
“혜화동으로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타갈로그어 미사 하는 날에는 성당이 꽉 찰 정도로 많이 왔었어. 지금이야 성북구인가? 거기에서도 타갈로그어 미사를 해서 좀 적게 오긴 하지.”
“그래도 많이 와. 여기 오는 사람들은 다 내 자식들이야. 그래서 음식도 사랑과 정성을 담아 만들어야지.”
“음식 다음으로 많이 사는 것은 의외로 과자야. 필리핀 사람들은 ‘이게 여기에도 있네?’ 하면서 사고, 다른 나라 사람들은 사진을 보여주면서 물어보고 사더라고.”
우리도 해외 편의점에 있는 한국 컵라면을 보았을 때 신기하듯이 필리핀 사람들도 같은 느낌을 받을 것이다. 본국에서 자주 사용하던 물건을 여기서 다시 만난다면 얼마나 기쁠지 나는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밥을 먹으며 수다를 떠는 사이 한쪽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내려오기 시작했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슬슬 미사가 끝난 모양이다.
“잘 먹었습니다.”
“벌써 가게?”
“다 먹었기도 하고, 사람들 오잖아요. 자리 빼야죠.”
“오랜만에 이렇게 이야기한 것 같아. 한국 아들! 조심히 들어가.”
필리핀마켓을 나오면서 듣는 저 말 한마디가 마음을 푸근하게 만들어 주었다. ‘엄마’의 말에 담겨있는 따듯함은 전 세계 어디나 다 같다. 필리핀에서 먹은 음식과 같은 맛이지만, 필리핀에서 먹은 맛은 여행의 즐거움이 담긴 맛이었고, 필리핀마켓에서 먹은 음식은 엄마의 따뜻함이 담긴 맛이었다.
서울에서 해외 음식을 먹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양식, 중식, 일식은 이제 너무 흔한 음식이 되었고, 쌀국수와 월남쌈으로 대표되는 베트남 음식, 카레와 탄두리 치킨으로 대표되는 인도 음식 등 다양한 국가의 음식을 판매 중이다. 해외 음식은 낯선 문화가 아니라 일상 속의 별미로 자리 잡았다.
이곳에 간 순간 마닐라의 퀴아포 재래시장에서 먹던 그 느낌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북적이는 사람들 속 한편에 앉아 필리핀 음식을 먹으면 이곳이 서울인지 마닐라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다.
서울 속에서 필리핀을 느끼고 싶다면 매주 일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필리핀마켓에 방문하는 것은 어떨까?
2019년 서울기록 수집 및 기록콘텐츠 개발 사업 수집 주제에 서사(Narrative)를 부여하여 각색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