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고가도로와 고가차도
지면에 있는 철도, 차도 등 지표면상 도로와의 평면교차를 피하기 위해 지면보다 높게 지대(地臺)를 가설하고 그 위에 설치한 도로를 고가도로라고 하며,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2조제2항제1호바목에 따른 기반시설로 지상교통의 원활한 소통을 위한 지역, 인구집중 예상 지역, 다수의 주민이 이용하는 시설이 있는 지역 등에 「도시 · 군계획시설의 결정 · 구조 및 설치기준에 관한 규칙」 등에 따라 고가도로를 설치할 수 있다. 고가차도는 고가도로와 같이 긴 구간을 하나의 도로로서 기능을 하지는 못 하나 짧은 구간을 고가로 연결하여 교량과 같이 도로의 일부 시설을 보완하는 도로시설물이다. 고가도로와 고가차도는 도로의 정비와 관리를 위한 도로시설물로서 1960년대부터 등장하기 시작하였는데 당시 시민들에게는 도로가 지면에 위치하지 않고 공중에 상판을 덮어 하나의 도로가 시설되었기 때문에 신선한 충격으로 여겨졌다. (서울교통사, 100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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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고가도로건설사업계획(1967-09-30) 출처: 국가기록원 |
서울의 고가도로 및 고가차도는 1966년 김현옥이 시장에 취임하면서 본격적으로 건설되었다. 당시 교통상황은 급격한 인구 팽창과 도시 외연 확산으로 인해 외각 지역에서 4대문 안 도심으로 교통이 집중되었고, 도로 정비가 미흡한 상태에서 도심을 중심으로 한 교통 혼잡은 교통 수요 규모에 비해 매우 심각한 상황이었다. 원활한 자동차 소통과 교통혼잡 및 정체를 해결하기 위해 혼잡구간이나 교차로를 고가도로 또는 고가차도로 입체화하는 등 교통 수요를 도심부에서 원활히 처리하기 위해 도심 지역 고가도로와 고가차도 건설이 시작되었다. 도심과 외곽을 연결하는 방사선도로, 외곽과 외곽을 연결하는 순환도로가 개설되었으며, 세종로, 태평로 등 도심의 주요 간선도로가 확장되었다. 하지만 당시는 교통 운영 전문가의 부재와 미흡한 교차로 설계로 인해 교차로 교통 정체 해결 방안으로 고가도로와 고가차도에만 의존했던 시기라고 평가되기도 한다.(안녕! 고가도로, 64p)
노량진고가차도[도면] |
고가도로라는 명칭을 처음으로 사용한 고가도로는 1968년에 개통된 아현 고가도로이다. 이전에도 1966년과 1967년에 서소문 · 광희 고가 등 작은 규모의 고가도로가 건설되었지만 이때 만들어진 고가도로는 차도 육교라고 불렸기 때문에 아현 고가도로가 서울시 최초의 고가도로로 기록되어있다.
아현 고가도로 개통, 1968-09-19 |
대한뉴스 제 695호-달라지는 서울, 1968-10-05 출처: [YOUTUBE] KTV 아카이브 |
1982년 88올림픽 대비 도로 사업계획 확정으로 주요 교차로의 고가차도 건설이 많이 추진되었다. 1961년 남산육교가 고가차도로 처음 건설된 후 1970년대부터 1980년대에는 방사축 도로 기능 개선을 위해 고가차도가 많이 건설되었다. 고가차도 건설 목적은 교차로를 교통신호에 의한 정차 없이 통과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방사 간선도로축의 도심 방면 교통기능을 증강시키는 것이었다. 당시 도심집중으로 인한 도심지 주변 교차로 교통 정체가 심각하여 방사 간선도로와 교차하는 도로를 고가차도로 횡단함으로써 교차도로 신호대기 시간을 줄이는 효과도 있었다. (서울교통정책변천사, 48p)
대한뉴스 제 719호-우리는 건설한다, 1969-03-26 출처: [YOUTUBE] KTV 아카이브 |
서소문고가차도설계도[도면] |
고가도로는 1968년 아현고가도로를 시작으로 1975년 서울역고가도로, 1976년 청계고가도로, 1996년 홍제천고가도로, 1998년 정릉천고가도로 등이 차례로 준공되었다. 고가차도는 1961년 남산육교를 시작으로 활발하게 건설되어 1990년대까지 건설되었는데 이외에도 철도 건널목 사고를 원천적으로 예방하기 위해서 행당고가차도, 옥수고가차도 등의 고가차도도 건설하였다.
영등포역사횡단도로(고가차도)개설을위한업무협조, 1991 | |
1978년 서울 문래동 고가차도 조감도, 1978-01-21 | 3.1 고가 진입로 공사 촬영, 1983-00-00 |
한정된 도로의 교통 효용을 높이기 위하여 고가도로와 고가차도가 시내 곳곳에 건설되었으나, 2000년대부터 시설은 점차 노후화되고 도시 미관을 저해한다는 평가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2000년대 중반 사람 중심의 보행친화적 도로정책과 대중교통 중시 정책에 따라 2002년 동대문구 전농동 떡전고가도로를 시작으로 도심부 교차로 입체시설인 고가차도와 고가도로가 본격적으로 철거되었다. 이명박 시장 재임 시기 버스개혁 정책 중 하나인 서울시 중앙버스전용차로 확대 정책으로 인해 원남교차로 등 고가도로의 철거가 확산되었으며 박원순 시장 재임 시기 탈자동차 정책과 걷는 도시 정책으로 더욱 탄력을 받았다.
한편 1970년대에 준공된 서울역 고가도로는 안전진단검사 결과 D등급으로 판명되어 안정상 문제점이 도출되면서 철거될 위기에 놓이게 되었으나, 철거 대신 지역의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 위하여 고가도로를 재활용하는 ‘서울로 7017’이 추진되었고, 고립되었던 서울역 일대를 연결하여 17개의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는 보행자전용도로로 재탄생되었다.
삼각지 고가차도 철거에 따른 업무협의, 1994-05-03 | 신당고가차도 철거계획 통보, 1995-04-19 |
타임랩스: 서울로7017 COMING SOON 출처: [YOUTUBE] 서울시 |